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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09: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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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글쓴이
국군교도소관리자
제목 : 가톨릭신문 - 12년째 국군교도소 희망대성당 반주 봉사하는 권명자씨

2016.07.24.

“성가 부르며 변화되는 수용자 모습에 큰 감동”
매 주일 풍성한 전례음악 선사, 적극적인 미사 참례 이끌어
“가진 재능으로 작은 도움 줄 뿐”

매주 주일 오전 8시40분이 되기 전에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희망대성당을 찾는 여성이 있다. 권명자(마르티나·수원교구 이천본당)씨다. 국군 내 유일한 교도소인 국군교도소 수용자들이 신앙생활 하는 공간인 희망대성당의 주일 오전 9시 미사에서 권씨는 매주 반주 봉사를 하고 있다. 12년째 한결같은 봉사다.

“봉사라는 말은 과분합니다. 저는 그저 희망대성당 신자들과 주일미사를 드리면서 저의 재능으로 작은 도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대학에서 주전공으로 성악을, 부전공으로 피아노를 공부한 권씨는 음악을 생업으로 삼아 강의를 나가면서 학원도 운영했다. 이천본당 글로리아성가대에서는 지휘자, 연주자, 성가대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군 교정시설인 국군교도소 희망대성당은 외부인이 출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곳이다. 더군다나 남성 수용자만 생활하는 곳이다 보니 여성이 출입한다는 사실이 특별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 권씨는 매 주일미사마다 빠짐없이 희망대성당을 찾는 유일한 여성이다.

“2004년 10월 13일입니다. 이천YMCA 청소년오케스트라와 함께 국군교도소 강당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의 나라로’를 불렀습니다. 그 공연에서 희망대성당에 미사 반주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권씨는 곧바로 희망대성당 사목을 담당하던 당시 군종교구 상승대본당 주임 양준 신부(광주대교구)를 찾아가 반주봉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양 신부가 흔쾌히 승낙하면서 희망대성당 주일미사에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오르간 연주가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성악과 피아노를 모두 전공한 권씨이기에 미사 참례자들이 성가를 부를 때 반주가 얼마나 큰 효과와 도움을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반주가 없으면 성가 음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성악가들도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부르기가 쉽지 않죠. 반주가 있을 때 성가를 부르는 신자들의 목소리는 확실히 달라집니다.”

권씨가 희망대성당 반주봉사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천본당 신자들이 간식, 꽃꽂이, 차량 봉사에 동참하며 희망대성당을 찾는 외부 신자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희망대성당 반주봉사를 시작하고 처음 2~3년 동안 저와 뜻을 같이했던 이천본당 신자들은 제가 10년 넘게 꾸준히 봉사하는 데 원동력이 됐습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희망대성당 주일미사 반주를 맡고 싶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장병들의 간절한 신앙에 권씨의 오르간 연주음은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그들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수용자들이 성가의 아름다움과 성가를 부르는 기쁨을 몸으로 느끼면서 미사 전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례하게 됐다. 권씨가 반주봉사를 하던 초창기에는 미사 때 부르는 성가 선택이나 연습을 권씨가 담당했지만 지금은 수용자들 스스로가 매주 전례에 맞는 성가를 고르고 연습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5일 희망대성당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주례한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를 위한 특송을 준비한 것도 수용자들이었다. 권씨가 보낸 ‘무언의 응원’이 만든 하모니였다. 권씨는 이날 미사에서 유 주교로부터 10년 넘는 희망대성당 반주봉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축복장을 받았다.

“지난주 7월 3일 군종신부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김태진 신부님을 보내며 모든 수용자들이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을 부르는 모습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느꼈습니다. 10여 년 반주봉사를 한 보람이 참 크게 다가왔습니다.”

권씨의 소망은 무엇일까. “희망대성당 반주봉사자가 한 분 더 있다면 제가 반주봉사를 하면서 성가 지도에도 힘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대성당에서 신앙생활하는 수용자들에게는 단 한 명의 봉사자도 소중합니다.”



■ 국군교도소와 희망대성당은…

국군 내 유일한 교도소인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국군교도소(소장 김성천 중령)는 아직까지도 ‘육군교도소’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육군교도소는 1979년부터 그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해 2014년 11월 국군교도소로 바뀌었다. 국군교도소로 편제가 바뀌면서 관할 상급 부대도 육군 인사사령부에서 국방부 조사본부로 변경됐고 교도소 관리인원 역시 육군 일색에서 해군과 공군이 포함됐다.

국군교도소의 역사는 곧 국군의 역사와 발걸음을 같이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3월 1일 서울 영등포에서 육군형무소로 창설된 국군교도소는 6·25전쟁으로 1950년 12월 대구로 이전된 뒤 1955년 7월에는 다시 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국군교도소 입구. 별칭인 희망대(希望隊)는 과거 잘못은 잊고 희망을 키워 미래를 준비하자는 뜻을 지니고 있다.

1962년 6월 경기도 성남으로 이전하면서 제1, 제2교도소로 분리해 교정임무를 수행했다. 1979년 7월 제1, 제2교도소를 통합해 육군교도소로 개칭했고 1985년 10월 현 위치인 경기도 이천으로 신축 이동했다. 국군교도소의 별칭인 희망대(希望隊)는 과거의 잘못은 잊고 희망을 키워 미래를 준비하자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국군교도소 내부에 있는 공소 역시 교도소 별칭을 따른 희망대성당이다. 희망대성당을 관할하는 본당은 육군 제7기동군단 상승대본당(주임 박정호 신부)으로 제7군단과 국군교도소는 인접한 부지를 사용한다. 희망대성당 신자들은 매주 수요일에 교리공부, 주일에 미사 봉헌을 하는 등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 받는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2년에 한 번씩 예수 성탄 대축일에 희망대성당을 찾아 수용자들을 위한 미사를 주례하며 수감생활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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